날이 풀리면서 제법 길어진 해도 무색할 만큼 늦은 시간의 어두운 밤, 번화가기는 하지만 비교적 빨리 영업이 끝나는 업종이 다수 분포한 지역의 특성 탓일까. 이 순간 낮 동안 바삐 돌아가던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함이 지배하는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은 그 부류가 꽤 명확하게 나뉘고 있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 잔 걸친 뒤 하루의 회포를 풀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경우부터 밤이란 이름의 은밀한 장막을 몸에 걸친 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커플들ㅡ 개중에는 어두움으로 한정된 시야에서 오직 상대만을 담은 채 연결된 온기에 초봄의 것이라기엔 지나친 온도를 느끼고 있는 풋풋한 한 쌍부터 어둠을 방패삼아 과감한 행동을 일삼는 경우까지 꽤 다채롭다.
하지만 그보다도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류는 그런 새콤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일상적인 매일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와 궤를 같이 하기도 하는, 이를테면ㅡ 그렇다.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충성하는... 자본주의의, 일의 노예, 험한 말로 사축이다. 실수에 대한 벌충이라든가 빠른 승진을 노리는 야망 등 각자의 이유는 다를 테지만 공통적으로 힘든 일과를 마친 그들은 흡사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흐느적 흐느적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다.
밤의 일부처럼 불을 밝힌 채 맛있는 냄새, 혹은 따스한 빛으로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품어주다 하나씩 소등을 시작한 가게들 대신 거리를 빼곡히 수놓는 가로등의 조명 아래를 혼자서 걷고 있는 사람도 엄밀히 따지면 그 중 하나였다.
어깨 죽지를 넘는 정도의 위치에서 움직임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리다 설핏 불어온 바람에 날리는 가느다란 금사, 밤하늘에 떠오른 달과 같이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 조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낮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채도를 하고 있는 이 시간 이런 거리보단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과 화사하게 피어난 꽃나무가 어울리는 화사한 생김의 여성이었다. 아침에 차려 입었을 정장은 오랜 시간 밖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단정한 채였지만 입었을 당시의 의욕은 이제 와선 찾아보기 힘들었고, 반짝임이 어울리는 푸른 눈동자에 흐리게 묻어있는 지침은 그녀 역시 사회의 부속이란 것을 보여준다.
발은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거의 귀소본능에 가까웠다. 반쯤 잠에 취한 채 피곤에 절은 몸, 지하철을 타고 움직일 때만 해도 주말인 내일 무엇을 할까에 대한 생각도 해 봤지만 당장 머릿속에 가득한 건 ‘자고 싶다’는 생각 뿐, 순찰을 도는 모양인지 이따금씩 찌르릉ㅡ 멀리서 울리는 자전거 체인 소리와 꽤 많이 따스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찬 기운이 조금은 남아있는 밤공기만이 뺨을 스치며 그녀의 정신을 톡톡 건드리며 깨웠다. 그 흐름이 몇 번 쯤 반복되었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자신의 뺨을 몇 번 가볍게 두드린 그녀,
“하아ㅡ..”
아야세 에리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김이 긴 꼬리처럼 공기 중을 하얗게 수놓다 흩어졌었는데. 사소한 것에서 세월을 느낀 그녀는 길게 뻗던 한숨이 작게 떨렸다. 외로움, 이었는지도 모른다. 버릇처럼 고개를 든 그녀는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았다. 텅 빈 시야, 달리 보이는 것은 없었다. 가로등의 조명,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 그 외 밤을 물들인 인공적인 빛깔은 화려하긴 했지만 지표는 될 수 없는 것. 허나 북극성을 찾기에 이 곳은 도쿄의 밤, 그것도 한적한 곳이 아닌 번화가의 거리, 별이 보일 리 없으며 때마침 하늘을 가린 구름 탓인지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서있는 위치가 나빴던 건지도 모르지만 기대했던 것이 보이지 않아 슬픔에 물들 법도 한 그녀의 고운 얼굴엔 의외로 의연함이 담겨있었다. 굳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는 무언가를 그리는 것처럼. 그녀 자신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뿌연 눈으로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지만.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느껴졌던 그것은 그녀 나름의 기분전환이었을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본인에게 있어선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다시금 앞을 향해 걷던 때,
“아.”
가방 속에서 진동과 함께 미세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버튼이 눌린 것처럼 자리에 덜컥 멈춰선 그녀는 빠르게 가방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음 소거 상태로 해두지 않은 것에 대한 당황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녀의 폰은 기능에 따라 지정된 소리가 달랐다. 게다가 통화라든가 메시지는 평소 기본적으로 진동을 고수하는 그녀에게 있어 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알람이 있다는 것.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짚이는 게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단순히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차원 이상의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 박한 평을 할 때가 많을 뿐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알람으로 등록까지 해 놓을만한 중요한 일을 떠올리지 못 할 정도로 완벽히 잊을 리가 없다고. 그런 식으로 허투루 일을 처리한 적 없는 그녀였고, 그 점은 그녀를 나이에 비해 상당히 높은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게 했으므로. 그렇다면 혹시 사적인 일인 걸까? 업무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을 때와는 조금 다른 부류의 죄책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연인, 혹은 친구 누군가의 생일? 사랑하는 이와의 소중한 기념일? 아무리 일이 바빴다지만! 울상을 지은 채 오늘따라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 꽁꽁 잘도 숨어있는 핸드폰을 다급하게 꺼내 들은 에리의 눈앞에 보인 것은
“이건 대체...”
ㅡ잊지 않아.
한 손에 채 꼽을 정도의 말, 잊지 않기 위해 남겼을 알람의 내용이 잊지 않는다는 내용뿐일 경우는 어떻게? 문자와 마주한 그녀는 곤혹스러웠다. 과거의 자신은 대체 무엇을 추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놀랐던 것의 반작용인지 텅 비어버린 머리로 알람의 시작인 오늘과 끝으로 지정되어 있는 내일의 날짜를 되새겼다. 날짜는 3월의 마지막 날과 4월의 첫날,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하기엔 시기상으로 미묘했다. 저번 달이었으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잊지 않아야 할 정도로 소중한 일은 아닐 터. 그렇다고 또 다른 가정인 만우절을 정답이라 여기기엔,
“아니 그건 절대 아닐 거야.”
스스로가 좀 부끄러웠다. 사기를 친다거나 거짓말로 남을 속여 넘긴다고 하면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은 이미지지만 자신은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놀리는 걸 꽤 즐거워하는 편이고, 설령 계획과 다르게 속는 입장이 된다고 해도 자신을 속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다가오는 상대방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는 건 나름 기대되는 즐거운 일이라서 그녀는 개인적으로 그 날을 꽤 좋아했다. 하지만, 그런 뭔가의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잔뜩 들떠있는 에리를 보며 그녀의 두 살 어린 연인이 하는 말, ‘어린애 같다.’ 란 핀잔 아닌 핀잔과 함께 전해지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랑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지근한 온도로 그녀의 뺨을 뜨겁게 만들어서ㅡ 조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새삼 얼굴이 달아오른 그녀가 볼을 식히기 위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때, 어느 샌가 부터 그녀의 머리에 사뿐 내려앉아 있던 꽃잎이 살랑살랑 내려와 화면 위에 올라탔다.
“아,”
올해엔 꽤 이른 시기에 개화가 이루어졌다지만 그녀가 벚꽃을 보는 것은 이번 해에 들어 처음이었다. 최근엔 바빴지. 꽃잎을 손에 든 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면 나무가 있을 테고, 밤의 벚나무는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으나, 그녀는 꽃나무를 찾는 대신 멈춰있었다. 손 안의 조각을 따라 보다 먼 곳의 더욱 소중하고 그리운 무언가를 쫓듯이. 그런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건ㅡ
“아!!”
머릿속에 그려진 그것, 흐드러진 벚나무, 사랑하는 자신의 모교 오토노키자카의 자랑 중 하나인 봄 경관이었다. 그래. 이날이었다. 인연, 꿈, 추억, 청춘, 그것들을 이루는 조각이자 모든 것을 모은 큰 그림이었던, 우리의 소중한 것을 마무리한 날.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는데. 현실로 눌러뒀던 둑이 터진 것 마냥 많은 것이 흘러넘쳤다.
“지금 이럴 게 아니지....!”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휴대폰의 화면을 켜면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시간이었다. 제법 늦은 시간, 하지만 누군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기대감을 안고 메신저 화면을 켰지만 평소엔 떠들썩하던 채팅방은 오늘따라 한산했다. 한 시간 쯤 전 다른 이야기로 불타올랐던 기록이 있으니 분명 다들 지금쯤 잠자리에 들었거나 이번 주 내내 바빴으니 주말을 앞두고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피로를 푼다거나 즐겁게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긴, 늦은 시간이고, 그리고...
ㅡ얘들아 오늘이 무슨 날이게?!
조금 맥이 빠져서 서둘러 치던 메시지를 천천히 지웠다. 이보다 더한 시간에 전화를 걸든 흥분을 못 이겨 집으로 쳐들어가든, 그녀는 소중한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을 책망하진 않을 터f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어울려줄 확률이 높다는 것도. 하지만, 이젠 모두가 어른이 되었고, 자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다. 선배금지를 주장한 건 자신이었지만, 이런 생각 했다는 거 알면 도리어 혼날 거라는 생각도 하기야 하지만, 혼자만 감상에 젖어있는 건 부끄러웠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가기로 정했으니까. 기억 속에 남겨 둔 책갈피와도 같았던 알람을 펼치고 기억의 시계바늘을 돌린 것 같은 감상에 싸여있는 것은 적어도 이 순간엔 자신뿐, 그 온도차가 외로웠다. 슬펐다. 혼자만의 소중함일 바엔 차라리 잠시 잊은 척 하는 게 나았다. 그것이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날이 밝으면 누군가가 먼저 말하겠지. 그럼 거기에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처럼 슬그머니, “맞아. 그랬지?” 라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막 피어난 감정인 척 “그립다.” 라고 말하며 이 순간 가장, 바라고 있는 것. “저기 오늘 다들 한가하다면 잠시 만나면 어떨까?” 같은 제안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터.
“그래, 그러면 되겠다. 결정된 거네!”
그렇게 생각했으나,
“...읏...”
잠시나마 가벼워졌던 발걸음은 목적지인 집에 다다랐을 때 쯤 기억에 잠겨 축 늘어졌다. 한 번 수면위로 떠올라 반짝인 것은 그 날의 떨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수 없는 열량이었다. 당장에라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는 조바심 탓일까 누군가에 의해 애태워질 때처럼 찌푸린 미간, 입술을 살짝 깨문 채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눈을 꾹 내려감은 뒤 얕은 한숨을 내쉬다 이내 결심한 듯 가장 손에 익은 번호를 꾹 눌렀다.
“저기 마키... 오늘 역시 늦게 끝나는 거지? 언제쯤 들어와?”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은 미리 받긴 했지만, 누가 더 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피차 바쁜 삶이다. 큰 수술이라도 잡혀 있는 날이면 다른 것들은 모두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보다 더 하드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자신조차도 알람을 듣고서야 상기한 일을 아무런 단서 없이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알면서도 혹시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같이 살고 있는 이상 그 아이라면 내 지금의 이상온도는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분명, 어쩔 수 없다는 듯 어울려줄 테니까. 그런 그녀의 기대를 잔뜩 안고 있는 전화 건너편의 상대는
ㅡ왜. 혼자 못 자겠어?
“그건...”
ㅡ주말이겠다, 푹 지쳐서 잠들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안타깝네.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
피곤 탓인지 평소보다 좀 나른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짓궂은 말이나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가득한 열기를 나누고 싶어서 연락했더니.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안타까움의 불씨를 지펴놓는 연인은, 쉽게 손을 내어주지 않는 아기고양이 같던 옛날과는 좀 다른 의미로 상대하기 까다로워져 버렸다. 그 때도 폭풍처럼 저돌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아기고양이가 아니라 역시 새끼표범이었나 싶긴 하지만, 본심을 한층 더 밝히기 힘들게 된 에리가 수화기 너머로 짓고 있는 볼멘 표정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던 마키는 곧 웃음기를 지운 채 니시키노 선생님으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ㅡ중요한 고객이라고 할까, 진료약속을 통 잡기 힘든 분들을 만나야 해서...
“응... 알겠어.”
그것도 평소 그녀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하는 생각에 숙덕거릴 모습이었지만 전파를 통해 목소리만을 전해 듣고 있을 뿐인 연인은 그 의미만을 조금 시무룩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른이니까. 아야세 에리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겐 어른이 될 틈을 안 줄 만큼 온갖 응석을 다 부리게 하고 즐겁게 웃는 이였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부분에선 꽤 오래 전부터 어른이었던지라. 진심이지만 바람과는 조금 다를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그 온도를 전부 담을 수는 없을 쪽, 하는 소리를 전한 뒤 한숨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터덜터덜 들어온 집안엔 하루 종일 집을 지키고 있었을 작은 조명이 실내를 어슴푸레한 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여전히 어두운 곳을 어려워하는 에리를 위한 거였다. 신발장에 들어오는 순간 불이 들어오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동거인의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였던 에리는 문제없다고 했던 것과 달리 “그러지 말고 그냥 아예 불을 다 켜고 다니는 건?”이란 말을 들었을 만큼 평소라면, 특히 혼자 있는 날의 밤이라면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빠른 속도로 자신이 다니는 공간의 불들을 후다닥 켜고 다녔지만, 답지 않게 현관에 대충 가방을 내려놓은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서랍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찾았다.”
오늘, 지금부터 할 일에 그런 행동은 불필요했다. 마음속에서 언제나 반짝이는 빛을 노래하는 데 있어 이 정도의 어둠은 적당한 것이었으므로. 소파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뒤 단 하나의 스위치를 켜자 텔레비전의 화면이 환하게 밝아지며 익숙한 멜로디가 텅 빈 방을 채웠다. 눈앞을 뿌옇게 흐리는 눈부신 빛, 가슴을 채우고 울리는 노래, 그 시절 모두와 좇던 것들.
“...잊지 않아, 언제까지나 잊지 않아...”
잊지 않을, 잊지 못 할 아홉 가지 색
“이렇게 마음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찾아냈어.”
너무나 눈부셔서 화면 너머에 존재할 뿐인 것으로 보이지만 분명 아직도 여전한 그것들을 추억하던 그녀의 입에서도 소리가 흘러 나왔다.
“기쁨을, 함께 노래하자.”
화면 속의 눈부신 하나의 빛, 한데 뭉쳐있음에도 어째서일까. 그 속에서 오히려 각자의 색채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자기 자신을, 서로를, 많은 것들을 노래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하나.”
모두의 바람이 어우러지는 노래를 혼자서 부르고 있는 것은
“작은 새의 날개가 드디어 커다래져서 여행을 떠날 날이야.”
그녀, 아야세 에리에게 있어
“저 멀리 펼쳐지는 바다의 색깔이 따스하게ㅡ 꿈속에 그린 그림 같아.”
신선하면서도, 아플 정도로 가슴이 꽉 차,
“애절함에... .....”
더 이상 노래를 이어 부를 수 없었다. 무슨 이유일까. 화면속의 노래는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더 이상 부를 수가 없어. 대체 왜 이렇게ㅡ...
슬픔은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모두 이루었으니까. 우리가 바랐던 모든 것들을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추억에 새겼다. 서로를 볼 수 있는 날은 줄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고. 그렇다면 이 감정은 대체 무엇?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나오는 것은 더 이상 노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 입을 꾹 다물었다. 뿌쳫게 흐려져 앞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눈도 꼭 감았다. 하지만 귓가에, 여전히 옆에서 함께 노래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그 속에 담긴 모두의 이름이 하나씩 흘러나올 때 마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려지며, 뚝뚝 흘러 내렸다.
“...그립다.”
분명 처음부터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마음속에 꾸역꾸역 눌러 담아놓았던 말을 툭 끄집어낸 에리의 얼굴은 삽시간에 왈칵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그렇다면,”
“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소가 이상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게다가 너무 적절한 때라서. 이럴 순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기대를 억눌렀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누구나 겁쟁이가 되어간다. 부족한 것은 새로운 곳에 발을 딛는 용기, 어려서부터 신중한 성격이었던 에리에게 부족한 것이었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남을 위해서란 이유로 떠밀리듯 앞에 나서는 건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저 멀리까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확신하지 않는 한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눈부셔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빈 교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모두의 눈빛,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던 태양 같은 아이, 웃음으로 받아들여주었던 모두의 온기가, 자신에겐 빛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나의 빛이 되었지.
실망이 두려웠지만, 지금 틀어져 있는 노래가 함께하는 한... 자신은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결의였으니까. 모두와의 약속이니까. 그리고, 내가 받은, 선택한 미래.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왜 이렇게까지 손이 가게 만드는 거냐고, 핀잔이 들린 것 같은 건 단순한 환청이었을까? 훌쩍이며 돌아 본 곳에서 보인 얼굴에 에리의 푸른 눈동자엔 환한 빛이 들었다.
“ㅡ시간을 되감아볼까?”
“마키...?”
어떻게? 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 하늘빛의 눈동자, 거기엔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와글와글 집으로 향하던 때부터 일찍이 마키가 예상했던 대로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물이 고인 채 반짝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어쩌면 오히려 더. 솔직함을 담은 채 순수하게 빛나는 푸름은 그 모습에 눈길을 빼앗겨 사랑이란 감정을 알았던 잊을 수 없는 어린 날의 기억과 다름이 없어서.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웃음에 가까울 가벼운 한숨을 흘린 마키는 손을 뻗어 눈가를 닦아준 뒤 입을 열었다.
“에리가 원하는 거면 다 할 수 있어.”
“그럼...”
그 시절, 어쩌면 자신 이상으로 날서있던 이 아이의 얼굴에선 부드러운 미소, 이 모습만으로도 세월의 흐름은 안타깝지만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다만 에리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경우엔 노력과 약간의 허세일 “뭐든지”란 말이 마키의 입에서 나오면 믿음직하게 느껴진다는 부분이라든가, 연상으로서 어떨까 싶어 부끄럽긴 했지만. 자신을 보는 눈빛의 따스함에 수줍음까지 느끼며 고개를 살짝 비낀 채 뺨을 붉히고 있던 에리는 작게 속삭였다. 잠깐만, 이 순간만이라도 좋으니까... 그 날의 우리로 돌아가서, 무엇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분명 그녀 혼자만 알 것이다. 왜냐면 에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걸로 끝, 전부 이어지지 못했으니까.
“아니 역시 됐어.”
“어째서?”
“모두와 함께인 게 아니면 소용없으니까...”
라피스 라즐리의 하늘이 그리움을 담은 채 핑 돌았다. 그 모습을 보는 마키의 눈동자는 한숨과 함께 가늘어졌다.
“뭐, 그럴 줄 알았어.”
“마키...”
“아니 딱히 화나거나 한 건 아니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불평? 불만? 체념? 뭐라고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버무려진 눈빛에 에리의 눈동자도 빛을 잃어갈 무렵,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타이밍을 재고 있던 자수정이 저 쪽을 향할 때
“이리 오너라!!!”
“...이거야.”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분명 집안에 발을 들이민 것은 단 두 사람의 인영뿐인데도 소란스러움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작게 혀를 참과 동시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쥔 마키를 향해 어두운 흑발을 늘어뜨린 작은 인영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너 말야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하더니 사람을 밖에 두고ㅡ”
“뭐~ 누구에게나 독점하고 싶은 순간이란 건 있는 거 아니겠나. 다른 아들이랑 같이 왔으면 했는데 우리가 너무 일찍 와서 마키쨩도 골치긴 했겠지.”
“뭐. 그러려고 빨리 온 거잖아?”
“그치~”
“둘 다 시끄러워.”
그 뒤를 이어 싱글싱글 웃으며 입을 연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 척척 궁합이 맞는 두 사람의 말에 뚱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 버린 마키와 달리 에리의 입은 놀라움에 살짝 벌어졌고, 눈동자 역시 각각의 면면을 확인하며 동그랗게 커졌다. 이건 꿈인가? 머릿속에 들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허둥지둥 뺨을 꼬집어보기도 전에
“니코! 노조미!”
후다닥 신발장으로 달려 나간 그녀는 미소로 반짝이는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소중한 친구들을 맞이하며 꼭 끌어안았다.
“뭐야. 저번 주에도 봤으면서 유난은.”
말없이 웃으며 마주 안아주는 노조미와 어이없다는 듯 핀잔을 건네면서도 싫지 않은 얼굴로 등을 두드려주는 니코, 그 사이에 있는 에리의 얼굴은 퍽 행복해 보였다. 언제나 서로를 그리고 있던 사이좋은 세 친구가 우애를 나누고 있는 그 모습은 누가 봐도 흐뭇해 할 만 한 장면이었지만 단 한 명,
“그래그래. 저번 주에 봤으면 지나칠 정도로 자주 봤네. 그러니 떨어져.”
“넌 맨날 보면서 뭐라는 거야,”
그 꽃말처럼 질투를 가득 담은 얼레지 꽃 색의 눈동자가 못마땅하게 일그러지며 에리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한사람 당 남은 팔 하나 씩, 현관 앞에서 때 아닌 줄다리기, 아니 에리 당기기가 벌어지던 중,
“마키쨩! 우리 왔ㅡ... 응? 나도 할래!”
“린쨩! 너무 목소리를 높이면... 어, 어째서 다들 에리쨩을 두고 싸우는 중인 거야?!”
영문을 모르는 와중에도 착실히 자리를 잡은 막내들에 이어
“와, 즐거워 보여~~”
“아. 우리가 제일 늦게 왔어?”
“다들 조용히 하세요! 이 시간에 동네에 피해잖아요...!”
이날의 주인공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다들 어떻게... 아무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거실에 혼자였는데. 환한 집안에 모두와 함께인 상황. 기쁨인지, 웃겨서인지. 처음엔 장난인 것 같았지만 나중에 들어선 인정사정없이 당겨지는 통에 좀 아프기도 하고? 이젠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정확하게 모르겠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도 모르게 울먹이는 에리를 보며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멤버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입을 열었다.
“그게, 에리쨩은 9번이잖아?”
“가끔 1번을 하는 건 어떨까 했던 거지.”
“그래서 조용히 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요.”
“어쩔까 고민하던 중에 말야.”
“분명 혼자서 울고 있을 거라고.”
“뭐, 그럴 것 같더라.”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울지 않는다고 항의하기엔,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바보였던 거네. 망설일 이유 같은 거 하나도 없었는데. 왜냐면, 언제나, 우리가 꿈꾸는 것은 같았으니까.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눈물은 충분하니까.
“그럼 모두들, 간다?”
기쁨을 노래할 차례, 겠지? 모처럼 1번이기도 하고. 모두의 손을 붙잡아 거실에 보여, 익숙한 대형을 취한 뒤 입을 열었다.
“뮤즈ㅡ”
눈물은 필요 없어 이대로 춤추자
“““““““““뮤직ㅡ 스타트!”””””””””
光を追いかけてきた僕たちだから
빛을 뒤쫓아온 우리니까
さよならは言わない
'안녕'은 말하지 않아
また会おう 呼んでくれるかい?
다시 만나자, 불러줄래?
僕たちのこと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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