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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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일처럼 태평하게 있어도 괜찮겠어?"
"응?"
"식인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말야."
부스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에리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면 여전히 내 손에 달라붙어있던 녀석은 눈만을 데굴 굴려 나를 쳐다봤다. 경계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안심한 채인 모습, 낙원에서 풀을 뜯는 초식동물이나 이런 모습 하고 있겠지. 김이 샐 법도 하지만 지금 하려는 행동엔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다. 에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 뺨을 받치고 있던 손을 빼내 에리의 얼굴 옆에 둔 뒤 다른 손으론 어깨를 눌러서 침대에 완전히 눕도록 쓰러뜨린다. 잘못 삐끗하면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내가 누워있던 메트리스가 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쉽게 할 수 있었다.
“누구나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와 스타일,예쁜 목소리,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면서 완벽할 정도로 귀여운 딱 너같은 아이는,"
어둠에 약한 에리가 습관처럼 켜놓은 작은 조명은 위치가 바뀐 에리의 얼굴에 미약한 빛을 쏟아냈다. 은근히 퍼지는 달빛보다 조금 강한 정도의, 하지만 그 효과는 스포트라이트마냥 시선을 온통 사로잡았다.
"세상에 둘도 없을 식재인 셈이니까.”
손을 들어 살며시, 단조롭기만 한 새하얀 시트 위에 빛무리처럼 흐드러진 금빛 실타래를 쓸어올리자 드러나는 흰 얼굴이 눈이부시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푸른 눈동자와 오똑한 코, 살짝 벌어진 입술, 그 모든 것을 내 팔 안에 가둔 채 내려다 보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우월감마저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건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 외 그 안에 감춰진 모습까지 알고 있으니까. 더더욱. 없던 충동마저 생겨 깨물고 싶어지는 목줄기를 타고 내려간 시선 끝엔 흘러내린 옷자락에 의해 훤히 드러난 어깨와, 남들은 옷 위로 상상의 나래나 펼칠 장소가 얼핏 드러나 있어서. 조금, 아니 상당히. 분위기를 타버린 내 입가에선 분명 내겐 어울리지 않을 웃음마저 나왔다.
"남김없이 먹어버리면, 전부 내 것이 될텐데ㅡ 라고. 생각할 법 하잖아?"
"니코..."
손을 움직여 그곳들을 차례로 쓸어 내리며 품고 있는 감정을, 온도를 숨기지 않은 채 은근히 속삭이면 내 손길에 움찔 떨던 에리는 내 이름을 부르며ㅡ
"놀랄 정도로 하나도 놀라지 않았어."
"...그래 보이네."
그냥 그 뿐. 비명을 지르며 뺨이라도 날리는 격한 반응을 바란 건 결코 아니지만 겁먹은 눈을 하고는 애써 웃으며 "니코.. 농담이지?" 라고 묻는 것 정도는 예상했는데. 이건 너무 조용하네. 지금껏 에리에게 걸었던 하고 많은 장난이라든가 농담들 중 가장 저조한 성적,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시청률 최저점을 찍은 것 만큼이나 신경쓰여서. 뭐가 문제였을까? 고민하며 조금 민망해진 자세를 고치려던 때였다.
“이미 지나칠 정도로 귀여운 데다가 멋지기까지 한데. 그런데도 더이상 원하는 게 있는 거야? 니코는 욕심쟁이네."
그래, 네 말대로 니코는 욕심쟁이고. 원하는 것도 많아. 그리고 지금 원하는 건... 놀려주려던 계획과 사뭇 다른 결과에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왜냐면, 욕심쟁이란 말을 입에 담는 녀석은 니코의 생각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가는 눈으로 웃으며ㅡ 아. 이런 녀석이었지.가끔 엇나갈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녀석. 오늘의 장난은 완전히 실패다. 오히려 부끄러워진 내가 시시하니까 이만 자겠다며 등을 돌려 버리자 조금 웃는 기색이던 에리는
“니코.”
“뭐.”
"니코에게 없거나 부족한 무언가를 내가 채워줄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누워있던 곳으로 채 기어 올라가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내 등을 콕콕 찌르더니 이마를 콩 박은 뒤 말했다.
“굳이 무언가를 더 구하지 않아도 니코는 항상 대단해.”
그와 동시에 배 쪽에 둘러 감기는 가는 팔, 무게있는 무언가가 등을 압박하는 감촉과 바짝 닿은 온기, 그 모든 건 상냥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한없이 부드러운 감각들이건만 그로 인한 내 반응은 괴로움에 가까웠다. 등줄기가 찌릿찌릿하면서 머릿속에 존재하는 뭔가가 타는 듯 한, 시끄러워. 시끄러워.
"뭐, 뭐어~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근데 니코."
울렁일 정도로 뛰는 심장이 어지러워 정신을 못 차릴 때
"아까 날 먹는다는 거 말야.”
열을 담은 날숨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촉촉한 무언가가 작은 소리를 내며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
“정말로, 단지 식사의 의미로서인 거야?”
평소 맑고 부드럽다는 평을 들을 때가 많은 에리의 목소리가 은근한 열을 담은 채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듯 달콤한 목소리, 당장 심장이 쾅 하고 폭발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충격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녀석, 어린애 입맛만 아니었어도 구미호쯤은 되지 않았을까. 간이든 쓸개든 조르는 대로 다 손에 넣을 테니까. 황급히 몸을 돌려 조금 거리가 벌어지자 못마땅해 보이는 눈동자를 상대로 말했다.
“그럼 그 외 무슨 의미가 있는데?”
"몰라? 정말?"
이건 승부다. 뻔히 둘 다 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을 입에 담고 요구하는지에 대한. 그렇게 판단한 난 끈덕지게 달라붙는 눈빛을 상대로 시치미를 뚝 뗐지만,
“그럼 내가 가르쳐줄까?”
“하!”
뾰로통하게 비죽이던 입술이 요염함을 담은 채 비틀렸다. 그와 동시에 내 목에 휘감기는 팔, 에리의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는 에리의 색인 하늘같은 푸르름보단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열기를 담은 채. 그건 상당히 재미없는 모습이었다. 쉽게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을 거라고. 좀 더 애태울 생각이었는데.
“너한테 가르쳐준 게 누군지 잊은 거야? 백년은 멀었어.”
“니코가 심술부리니까 그런 거잖,”
네가 너의 색 외에 가져도 되는 것은 니코의 분홍뿐이라고. 옅은 빛속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표정을 보면 분명 보기 좋게 핑크빛으로 물들었을 뺨을 감싼 채 뭐라고 말을 늘어 놓으려는 입을 먹듯이 틀어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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